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청소년분들과 일을 나눠 맡아서 같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청소년분이 자신이 일을 잘 못한다는 점 때문에 미안해하고, 또 활동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에 빠지곤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이유로, ‘내가 아직 어려서, 청소년이라서… 서툴러서 그렇다’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선 청소년인 활동가들이 대외적으로 나서서 당사자로서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고 발언하는 일을 많이 요구받다 보니, ‘청소년들은 운동에서 이미지로, 얼굴 마담으로 소비되고 다른 역할을 맡기 어렵다’라는 문제의식이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 사회의 여건상, 청소년들은 아무래도 대부분 인권운동의 경험 같은 것도 별로 없고, 직접 어떤 일을 책임지고 맡아서 해 본 직업적인 경험도 적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청소년이라서’ 못하는 걸까요?
제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진실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상당수의 시민사회단체 비청소년 활동가들도 일을 못합니다. 여기에서 못한다는 것은 ‘잘하는 수준이 아니다’ 정도가 아닙니다. 정말로 보도자료를 쓸 줄 모르고 행사 기획을 해 본 적도 없고 홍보물을 만들어본 적도 없어서, 회의에서 일을 나눠 맡을 때 거의 역할을 나눠 맡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설령 나이를 먹더라도 ‘인권운동의 활동가’로 훈련받고 경험을 가질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활동가로서 해야 할 실무들도 어디서 제대로 배우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는 대개 자발적인 결사체이고, 작은 시민사회단체들이란 곧 모두 아마추어인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들 척척 글을 잘 쓰고 말을 유창하게 하며 행사를 기획·준비하고 홍보를 잘해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을 놓고 ‘전문가 중심’이라는 비판과 ‘너무 아마추어적이다’라는 비판이 공존하는데요. 모순 같지만 둘 다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나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역할을 많이 하는 단체(주로 크고 유명한)가 있는 반면, 활동가로서의 역량이 그리 갖춰져 있지 않은 시민들이 주축인 단체들도 있는 거지요. 하지만 너도나도 전문가나 지식인 같은 게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꼭 글을 잘 쓰거나 디자인을 하거나 하는 것만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은 아니거든요. 꾸준히 활동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하고, 단체와 운동에 책임감을 갖는 것도 비록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운동에서의 역할입니다.(이 주제로는 또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 같아요.)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일을 잘 못하는 청소년 활동가와 비청소년 활동가 사이의 차이는 뭘까요? 바로 비청소년 활동가들은 ‘내가 청소년이라서 일을 잘 못하나’, ‘내가 활동가 노릇을 잘하는 게 맞나’ 같은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역할을 많이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긴 하지만, 행사에 참여하고 단체를 꾸리고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게 꼭 틀린 것도 아니지요.
소수자들은 그 소수자라는 위치 때문에 흔히 더 위축되기 쉽고, 자신의 부족함을 소수자성과 연결하여 생각하며 어려움을 겪고는 합니다. 청소년 활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주변에서 더 ‘저들은 청소년이라서 못한다’라고 생각할까 봐 눈치를 보게 되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갖다댑니다. 그래서 운동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너무 일을 못하는 것 같다고 고민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을 보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활동에 서툰 것은 나이가 어려서, 청소년이라서는 아니고, 청소년이니까 더 눈치를 봐야 하는 문제도 아닙니다.(어느 단체의 40대, 50대 누구누구를 보세요…) 차근차근 운동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 찾아가고, 잘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걸 배우고 연습해나가면 됩니다.”
다른 한편, 공교육이 제대로 굴러가면 중·고등학교 과정 정도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고 행사 하나 준비해보는 것 정도는 좀 능숙해져 있어야 하지 않을지까요? 그런데 그런 역량은 안 길러주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만 몸에 배게 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니, 결국 학교가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