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운동이 '참, 힘이 없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야 참 많습니다만(최근에도 그렇고요) 특히 시민사회운동 안에서 작다면 작은 문제도 잘 바뀌지 않는 걸 볼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기후 위기 대응을 비롯해 환경·생태운동 쪽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같은 표어, 발언이 널리 쓰이는 것도 그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번 주 9월 23일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도 참여하는 기후정의행진을 앞두니 또 걱정이 드네요.
이런 식으로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어른들이 나서자’ 같은 표어, 구호 등에 문제제기를 한 적은 여러 번 있습니다. 교육운동에서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 같은 걸 만들었을 때도 있고… 탈핵운동에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문구를 내거는 걸 비판하면서, 녹색당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탈핵운동과 청소년 – 아동청소년, 보호할 것인가, 함께 갈 것인가’(2014년 5월 14일)라는 간담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기후 위기에 관련해서도 ‘청소년은 미래세대가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기후 위기를 막자고 하지 마라’ 그런 발언을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청소년 보호주의나 대상화 전반을 비판하는 활동이나 정치인/정당/언론의 표현을 지적한 것까지 넓혀서 보면 셀 수도 없을 정도겠네요. 하지만 작년, 올해에 기후정의행진을 갔을 때도 여러 발언에서 ‘아이들을 위해’, ‘미래세대에 살 만한 지구를 물려줘야 한다’ 같은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참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식의 표현과 그에 담긴 사고방식은, 어린이·청소년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위치시킴으로써 비청소년들을 주체로 호명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비청소년들이 어린이·청소년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담고 있고, 어린이·청소년의 주체성을 지우거나 폄하하는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에서 ‘우리’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란 건 명백하지요.(그 밖에도 기후정의 문제를 미래세대로부터 지구를 빌려서 쓰는 거라거나, 미래세대에게 안 좋은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부정의하다는 논의가 많습니다만 저는 이게 논리적으로 꽤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량 관계상 설명은 생략.)
왜 이런 말이 잘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인기가 있을까요? 물론 청소년운동이 너무 힘이 없어서, 인지도가 없어서, 이런 말이 비판받는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비판을 접하더라도 수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왜 그런지, 왜 이런 말을 포기 못 하는지 궁리하다가 저는 어린이·청소년이 ‘편리하고도 자연적인 타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달아봅니다.
‘남’의 존재는 인간이 자신의 삶이나 행동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 돕는 일을 하고 뿌듯함을 느끼곤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사회에서는 서로 ‘의미 있는 남’이 별로 없다시피 하고, 공동체나 관계가 매우 약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가까운 남’, ‘나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내가 헌신할 대상’은 바로 어린이·청소년입니다. 아이와는 출산과 양육을 통해 자연적으로 돌봄의 관계를 맺게 되지요. 또한 과거·현재의 사회에 대한 책임에서 면제되어 순수하고 무고한 듯 보인다는 것도 매력입니다. 따라서 ‘아이들/미래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하자는 말은 힘을 갖기가 쉽습니다. 참 안타까운 노릇이지요.
반대로 말하면, 남과의 연대, 관계가 약한 사회일수록 ‘아이들’을 자꾸 명분으로 소환하게 된다는 혐의를 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특히나 기후 위기와 같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연대의 감각과 인식, 전 지구적으로 책임을 공유하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염려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더 나아가는 기후정의운동을 위해서도 추상적인 미래세대로서 ‘아이들’을 자꾸 불러대기보다는, 기후 위기를 겪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행동의 필요성을 찾고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해야 할 때입니다.
제가 자주 듣는 〈옆을 쳐다봐〉라는 민중가요가 있는데요. ‘앞만 보지 말고 옆을 쳐다봐’라는 게 주제이긴 합니다만(그러고보니 가사 중에 “병들어 쓰러진 내 아이들”이란 구절도 있군요;) ‘아래(아이, 후세대, 보호대상)만 보지 말고 옆(동료 시민들, 타자들)을 쳐다봐라’, ‘어린이·청소년을 내려다보지 말고 옆에서 치어다보아라’라고 이 노래를 조금 비틀어서 이야기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