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없는 기자회견’에 참여해본 적 있나요? 사실 활동을 하다 보면 기자 없는 기자회견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름 미리 홍보도 하고, 취재요청도 뿌리고 하는데 실제 현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지요.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시의회 앞에서 진행한 청소년인권을 위한 지방선거 정책 발표 기자회견도 그랬습니다. 푸른 계절답게 화창하고 눈이 부신 날이었어요. 조금 일찍 도착해서 현수막을 펼치고, 보도자료를 다시 확인하고, 피켓을 나눠 들고, 앰프가 잘 나오나 마이크 테스트도 하고. 누군가는 긴장한 표정으로 발언문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서로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온 취재진은 아무도 없더라고요.
사실 기자 없는 기자회견이 처음은 아니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꼈던 걸까요? 그러려니, 하면서 깊이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옆에 있던 동료가 한마디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한 명도 안 올 수가 있어?” 그 말을 듣고 그제서야 다시 한번 둘러봤던 것 같아요. 그러게요.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어린이날 행사장에 갔을까요? 후보들의 유세 현장으로 갔을까요? 혹은 ‘청소년인권’이 뉴스가 되기 애매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후보들은 저마다 지역의 미래와 교육의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 안에 학생과 청소년은 어디에 있는지 잘 찾기 어렵습니다. 그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도 써있듯, 교육정책은 넘쳐나지만 학생의 권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돌봄과 복지를 말하지만 청소년의 삶은 빠져 있습니다. 학교를 말하지만, 정작 학교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의 존엄과 자유, 안전과 참여는 정책의 중심에 놓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 기자회견은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학교 구성원들을 대립시키는 방식으로만 다루지 말아야 한다, 청소년도 시민이다,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말아라, 학생과 청소년의 삶을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으로 보장하라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꼭 언론에 보도되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게 누군가는 계속 말하고, 기록하고, 퍼뜨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날 함께한 발언들이 하나하나 소중해서, 이 이야기를 우리만 들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시는 여러분께 다시 전해봅니다.
아래는 제가 꼽아본 발언문의 대목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된다’는 말보다는 ‘안 된다’, ‘어렵다’, ‘그러면 안 된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무엇 하나 하려고 해도 민원이 들어와서 안 된다, 교칙 때문에 안 된다 하는 말을 듣는 현실입니다.”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성령)
“청소년 성소수자도 시민으로서 존재합니다. 특히 시도 교육감 후보들은 성소수자 학생 인권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정책 수립을 약속하십시오. (…) 안전하고 평등하게 학교를 다니고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린이 청소년 인권을 약속해주십시오!“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민석)
“베트남 출신 A는 자신을 ‘받아주는’ 고등학교를 알아보기 위해 열 곳이 넘는 학교에 전화를 돌려야 했습니다. 어렵사리 학교에 들어갔지만 A는 수업 내용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교사에게 휴대전화 AI 번역기 사용을 요청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법’이라며 서울시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학생용 태블릿인 ‘디벗’을 건네받았지만, 디벗을 켜보니 A가 쓸 수 있는 번역기는 파파고뿐이었습니다. (…) 이주배경을 지닌 다양한 구성원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진짜 미래’를 함께 겪어나갈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합니다.“
(각색교사모임, 채민)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느낀 것은, 같은 교실에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경험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너 도움반 가”라는 말을 듣거나, 반에서 유령처럼 취급받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발달장애 학생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환경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 김현아)
기사가 되지 못한 발언들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청소년인권의 이야기들이 ‘있어도 없던 것처럼’ 되지 않도록, 한 번 더 눈여겨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