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활동가들이 주변 지인들에게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네가 하는 일이 대체 뭘 하는 거야?’이다. 상품을 만드는 일도 아니고, 서비스직도 아닌 것 같고 하니까 인권운동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건지 파악이 안 되는 듯싶다. 혹시 그런 오해와 무지가 인권운동을 비롯해 시민사회운동이 하는 일 없이 정부 보조금이나 후원금을 받아서 축낸다는 식의 편견으로 이어지는 걸까?
다소 도식적으로 인권운동의 프로세스를 묘사하면 이렇다. 먼저 인권 문제를 접수, 인지한다. 상담·제보 창구, 조사 활동을 통해서일 때도 있고, 단체 내의 회원·조합원·활동가가 인권 침해를 겪는 당사자일 때도 있다. 이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해자나 책임을 가진 기관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세상에 알리고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활동을 한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나 사회적 변화 과제 등을 고민하고 연구한다. 더 크게 사회와 체제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장기적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집회·시위, 서명운동, 캠페인 등 여러 방식으로 사회적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체를 운영하고, 활동가와 참여자, 지지자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교육하며, 후원금을 모으는 등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그림은 이렇고, 인권운동마다, 단체마다 상황과 조건이 달라 각양각색이다.
한 가지 의외일 수도 있는 사실은 집회·시위를 나갈 일이 그렇게 많진 않다는 것이다. 인권활동가들의 별명 중 하나가 ‘전문시위꾼’, ‘데모꾼’일 정도로, 인권활동가들의 주 업무가 국회·정부 앞이나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만연해 있다. 하지만 활동을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집회·시위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운동이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오해가 인권활동가는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일종의 ‘전문직’이라는 인식이다. 아무래도 ‘인권’이라는 게 좀 어려워 보이고 법률 등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 보여서 그런가 보다. 인권활동가들 중에서 날카롭게 또는 감동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 멋있고 조리 있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눈에 띄기도 한다. 이제 막 인권운동에 입문한 사람들 중에도 인권활동가가 되려면 글쓰기나 연설, 강연 등을 연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인권운동 안에서의 역할이나 역량이 차등화되는 것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글을 쓰거나 디자인을 하는 등의 역할은 가치 있고 뛰어난 활동으로 여겨지고, 짐을 나른다거나 집회에 참가하는 등의 역할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덜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는 식이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는 자기가 ‘허드렛일’이나 ‘뒤치다꺼리’만 한다고 불만을 갖기도 하고, 글쓰기 같은 것을 잘하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일부분에만 눈길을 사로잡혀 범하는 오류라고 생각한다. 운동 안에서는 그럴듯한 글을 쓰는 일이든, 거리에서 홍보물을 나눠 주는 일이든, 투쟁 현장에 참석해서 함께하는 일이든, 회원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이든 모두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이다. 어찌 보면 운동과 단체가 지속되기 위해 필수적인 활동은 오히려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회계와 회원 정보를 관리하며 장소를 관리하고 연락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등의 ‘뒤치다꺼리’이다.
물론 단지 생각을 달리한다고 해서 이런 차등화가 해소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이처럼 활동의 종류를 줄 세워서 생각하는 데는 실제 사회에서의 평가나 보상의 차이가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정신노동’을 ‘육체노동’보다 우위에 두는 문화가 강하고, 단적으로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들은 사회적 인정을 얻기도 쉽고, 박수도 받을 수 있으며, 때로는 돈도 벌 수 있다. 인권운동 역시도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단체 안팎에서 이런 문제를 직면하고 활동을 함께하기 위한 소통과 노력이 중요하다. 물론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운동의 전문가이겠지만, 그것이 말과 글이 유창하다거나 공부를 많이 했다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차라리 인권활동가들이 인권운동 안의 여러 노고와 활동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권운동이 잘 굴러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평등하게 존중받고 인정받는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다짐이라고 하겠다.
🔸 '공현의 투덜리즘'은 예전에 공현이 함께 만들었던 〈오답 승리의 희망〉의 간판 코너명이었는데요. 오승희를 기리는 마음으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 사진 설명 = 활동가들이 캠페인용 물품을 나르는 사진으로, '2010년 청소년 활동가 활동기반마련 후원의 밤 "HOT YOUTH"'의 홍보용으로 가공했던 이미지입니다.